버릇없는 펭귄의 이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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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만났던, 피자 든 할머니 오늘의글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등하교와 출퇴근을 지하철로 하다보니
지하철에 관한 에피소드가 몇개 있는데
그 중 간간히 생각나는 한가지가 있다.

이른 퇴근길이었던 것 같다.
내가 탄 칸에는 서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빈자리도 없었다.
나는 한줄의 의자 중 끝에서 두번째(자동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의 바로 옆)에 앉아있었다.
어느 역에선가 때마침 가장 끝자리(내 옆) 사람이 내렸고
동시에 한 할머니가 피자 한판을 들고 탔다.
내 옆의 빈자리를 발견한 할머니는 기쁜 마음으로 앉을 준비를 했다.

할머니가 내 옆자리에 앉기까지 그 짧은 시간에 세번을 놀랐다.
첫번째는, 할머니가 곱게 들고온 피자판을 의자 위 가장자리에 '세워' 놓는 것이었다.
(피자판을 세워서 놓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러면 왜 힘들게 피자판을 눕혀서 지하철까지 들고온거지?)

그리고 곧 두번째로 놀라게 되었다.
소중한 피자가 의자 위에 세워져 있으니 본인이 앉을 자리가 좁아진 것이다.
피자를 세우고 나를 보더니 웃으며 옆으로 가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나는 순간 이게 무슨 의미지 싶었다.
본인이 앉을 자리가 좁으니 내 몸을 구겨서 본인 자리를 만들어달라는 소리인지
아니면 본인이 좀 넓게 앉도록 일어나달라는 소리인지.

너무 황당해서 그 할머니한테
피자를 무릎에 올려놓고 앉으세요라고 했다.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할머니가
'에잉 쯧' 이런 표정을 지으시더니,
옆에 세워놓았던 피자를 
등 뒤쪽에 세워놓고 앉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난 세번째로 놀랐다.

그 할머니는 도대체 왜 피자를 세워놓은 것일까?
그리고 나보고 옆으로 가라고 손짓했던 건 정확히 무슨 의미일까?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해서 그런지 간간히 그 할머니가 생각이 난다.


슈퍼맨 오늘의글

시간이 좀 오래된 이야기이긴 한데, 잊고 싶지 않아서 기록해본다.

남편, 아이와 어딘가를 갔다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리집이 있는 역에 내려 자동개집표기(일명 개찰구)를 지나가려던 찰나였다.
아이가 사람들이 교통카드를 찍고 나가는 걸 유심히 보더니,
개집표기 안쪽에 있는, 네모로 생긴건 뭐냐고 물었다.

교통카드를 찍고 나가지 않으면 
저기 네모난 날개같은 것이 내 앞을 탁 가로막아서 나갈 수 없다고 알려주었다.
곰곰히 생각하던 아이는,
자기는 달리기가 빨라서 막히지 않고 저기를 지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해보라고 했다.

열심히 달려서 개집표기를 지나가려던 찰나,
역시나 양쪽에 있던 자동 판넬이 탁 하고 앞으로 나오면서 아이를 가로막았고
아이는 판넬에 장렬하게 부딪친 후 뒤로 나자빠졌다.

근데 그 상황이 너무 웃겼다.
본인은 빛의 속도로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너무 우스웠다.
평소 달리기하는 걸 보고있으면
아, 우리 아이는 나 닮아서 운동을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떠오르는데
본인은 스피드가 굉장히 빠른줄 아는 것 같다.

원래 어릴 땐 누구나 자기가 슈퍼맨같은 줄 아는거지, 뭐.


머리하기 놀이 오늘의글

아이와 놀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화장하기 놀이와 머리하기 놀이이다.

나는 화장도 쿠션 하나면 땡이고,
네일은 관심이 없어서 해본 적도 없고, 
미용실도 앉아있는 시간이 괴로워서 잘 안가는데,
우리 아이는 꾸미는 것에 관심이 아주 많다.
예전에 샀지만 쓰지 않아서 방치하고 있는 맥이나 바비브라운 색조화장을
늘 관심있게 보고 있다가 나 몰래 자기 얼굴에 발라보기도 한다.

그런 내가 왜 화장놀이와 머리놀이를 선호하느냐면...
내가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는,
때로는 누워있을 수 있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이의 관심사를 내가 억지로 막을 수는 없으니
이왕 놀꺼 내가 편한 놀이를 하자는 심보다. 

얼마 전 아이가 내 머리를 예쁘게 해주겠다길래
눈 감고 가만히 앉아서 반쯤 졸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고무줄로 머리를 묶는다고 내 머리카락 몇가닥을 뽑곤 하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조용했다.
기분이 조금 이상했지만 눈 뜨기가 싫어서 몇 분 더 그렇게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아이들이 조용하면 그 순간 바로 사고를 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뒤를 돌아보았더니...

내 머리를 묶었는데 머리카락이 조금 삐져나왔고 그게 본인 마음에 안들었던지
사각사각 가위로 자르고 있었다.
아주 장난감 쟁반까지 들고와서 한손으로 가위 잡고 머리카락 자르고
한 손으로 잘린 머리카락을 접시로 받고 있고...

깜짝 놀람과 동시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
빵 터져서 깔깔거리면서 엄마 머리카락 막 자르면 안된다고 얘기했더니
그제서야 가위를 놓았다.

오래 전에,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아이가 가위를 쓰기 시작하면 자기 머리카락도 자르고 그러니 주의깊게 보라고 하셨었는데
그게 본인 머리카락이 아니라 내 머리카락일줄이야.

그래도 그 와중에 친구 머리카락으로 사고친게 아님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카락이야 뭐 또 자라는 걸.

공평하게 하려는 마음 오늘의글

우리 아이는 외동이고 최근 집순이 기질을 많이 보이고 있어서
내가 매번 놀아줘야 한다.
마찬가지로 집순이고 에너지도 별로 없는 나는 
누워서 입으로 놀아줄 수 있는 놀이를 생각해내곤 한다.

얼마전에도 심심하다고, 자꾸 놀아달라고 하길래
누가 물건 빨리 잡나 놀이를 하자고 했다.
그러자 아이가 자기 앞에 장난감 4개를 늘어놓았고 본인이 시작을 외쳤다.
아이가 열심히 세개를 잡는 동안 나는 느리게 가서 한개를 잡고는
안타까워하는 표정으로 엄마가 졌네라고 말했다.

아이는 자기가 이겼다고 좋아하다가 나를 보더니 
'엄마 져도 괜찮아.'이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하자고 하면서 자기 앞에 똑같이 물건 4개를 늘어놓았다.
본인이 또 시작을 외쳤는데,
이번에는 본인이 두개만 잡고 내가 나머지 두개를 잡을 때까지 기다리는게 아닌가.
내가 가서 두개를 잡자, 마치 나를 위로해주듯이 우리 둘이 똑같이 두개씩 잡았다고 말했다.

경쟁심이 있는 편인 아이가
이기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공평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그 착하고 순수한 마음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비단 우리 아이만 이런건 아닐꺼다.
모든 아이들은 참 착하고 순수하고 사랑스럽다.
그런 모습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열두띠 이'야'기 오늘의글

아이가 잠들기 전, 침대에서 책 3권 정도를 항상 함께 읽는다.
집에서 따로 한글 교육을 시키지는 않지만 아이가 글자에 관심있어해서
책 제목을 열심히 읽으며 연상되는 글자를 함께 말하곤 한다.

예를 들면 이런식이다.
'토끼와 거북이'라는 책이라면, 내가 '토'를 가리키면서
"여기 토끼의 토가 토요일의 토와 같네."라고 한다.

어제는 전래동화 중 '열두띠 이야기'를 읽었다.
여섯글자 중 아이가 '야'자를 가리키더리 이렇게 말한다.
"엄마, 여기 야. 야근할 때 야."
아, 너무 웃겨서 깔깔거렸더니 아이가 한마디 덧붙인다.
"엄마, 야식할 때 야."

안그래도 아이가 스타벅스 앞을 지나갈 때마다,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스타벅스."
맥주 사진을 발견할 때마다,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맥주."
이러는데...

휴, 아이 앞에서는 항상 행동 조심 말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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